6. 참 하나님이며 참 인간이라는 역설
인간 예수의 참된 의미를 적절하게 표현하기 위해 사람들은 교회사의 전통에서 다음과 같은 역설을 진술했다. 예수는 참(=실제적인) 하나님이고 동시에 참(=실제적인) 인간이다. 이러한 이중적인 진술은 예수에 대한 신약성경의 고백을 적절하게 확증한다. 즉 예수는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의 중개자이다.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서 우리 인간과 마주 대하시며, 예수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간의 대변자가 되신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딤전 2:5-6). 마르틴 루터는 이러한 역설을 두 번째 조항에 대한 설명에서 다룬다. "아버지로부터 태어나신 영원한 참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태어나신 참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님이심을 나는 믿습니다."
인간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의미를 적절하게 그리고 제한 없이 제시하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가 참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 인간이시다."라는 신앙고백을 포기할 수 없다. 예수를 단지 특별한 인간으로만 보는 자들은 예수가 무제한적으로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성경의 증언에 부합되지 않는다. 예수를 단지 (인간의 형태로 나타난) 신적인 존재로만 보는 사람은 말씀이 '육신' 즉 실제적인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7. 성경의 문헌이 증언하는 예수의 신성
예언자의 증언
앞의 문단에서 예수의 인간 됨을 중점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이제 마지막 부분에서는 예수의 신성에 대한 신앙고백과 관련된 또한 그러한 신앙고백을 이끌어 낸 몇몇의 성경구절과 내용을 상세하게 살펴보려고 한다.
이미 예언자는 이 세상의 구원을 이루려 하시는 하나님의 행동을 약속한 바 있다. 이 약속은 지상세계로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실 것을 진술하고 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구원을 이룰 새로 태어날 아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한 모사라("기묘자라 모사라"라는 개역개정의 번역은 수정되어야 함),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사 9:6). 이 모든 것은 하나님에 대한 진술이며 또한 이는 새로 태어날 인간 어린아이가 갖게 될 진술이다. 이와 유사하게 예언자 미가 역시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는"(미 5:2) 구원을 가져올 미래의 통치자가 베들레헴 도시에서 다윗의 가계로부터 출생하게 될 것을 이야기했다. 이처럼 우리는 오직 하나님 그분에 대해서만 진술할 수 있다.
예수와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관계
예수가 인간이 도신 하나님이라는 증언은 예언에만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제자들이 지상에서의 예수의 생아와 부활을 통해 경험하게 된 예수와 하나님의 특별한 관계에도 근거를 두고 있다. '하늘 아버지'라는 하나님에 대한 명칭은 유대교에서 잘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존경에 가득 찬, 거리감이 있는 호칭이었다. 반면 예수는 하나님을 '아빠'라고 불렀는데, 이는 가족적인 친숙함을 표현하는 말이다. 이 단어는 예수와 하나님의 절친하고 내적인 교제와 결속을 특징적으로 표현한다.
예수는 특별한 방식으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이해했다. 처음 세 복음서(공관복음)에서 예수는 하나님을 항상 '자신의' 아버지라고 말씀하시는 반면, 제자들에게는 '너희 아버지'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예수는 '우리 아버지'라는 표현으로 자신과 제자들을 함께 묶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주기도문의 '우리 아버지'는 하나님과 제자들의 교제와 관련된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 6:9) 이러한 예수의 특별한 아들 관계와 부활 경험(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한 자신의 아들을 인정하시고,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시고, 그를 자신의 오른편으로 올리셨다.)은 예수가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하나님께 속하며,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더욱이 하나님 자신이 예수로 나타나신 것임을 제자들에게 명백하게 보여주었다.
예수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행동하신다.
가령 예수는 그가 죄인을 용서하는 권한이 자신에게 있음을 주장하기 위해서 하나님처럼 하나님을 대신해서 행동하신다. 예를 들어 예수가 구약성경의 하나님 말씀을 강화시킬 때나 심지어 그것을 폐기할 때조차 예수는 하나님처럼 행동하신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예수는 모든 사람보다 그리고 그 시대의 모든 신학 교사들(바리새인, 사두개인, 율법학자)보다 하나님을 더욱 더 잘 알고 있음을 주장하면서 등장하셨다. 이러한 주장은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신성을 모독한다고 성토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가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했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참 하나님을 선포하는 예수의 주장이 거부되었기 때문이다.
부활 경험
부활 이후에 제자들과 사도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으로 완벽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은 예수를 '주님'(그리스어, '키리오스')으로 부른다. 그들은 예수를 직접적으로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듯이 그분에게 기도했다.(행 7:59-60, 스데반) 그들은 예수를 하나님과 매우 동일한 존재로 인식하고 보았기 때문에, 그들은 창조주, 영원부터 계신 분이라는 하나님에 대한 진술을 예수에게도 사용했다.
하나님으로 상승한 그리스도는 예수가 그 제자들에게 물었던 질문을 우리에게도 던진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막 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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